2007년 12월 06일
천년고도 로마를 다녀오다. 셋째날
...10월달에 쓰다가 '아 십라 수능 끗나고 마저 써야지'하고 방치해뒀다가, 그대로 잊어버렸던 비운의 여행기[..]
거참. 갔다온지 3달이 넘어서 정리해서 올리는 저도 웃깁니다만[..]뭐 그래도 여기 적어놓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 할 일도 있겠지요.
셋째날에는 그리 쓸일도 없었으니 다행인지도.
삼일 째.

이 날의 목적지는 기억 속에 매몰된 잃어버린 도시 폼페이였습니다. 첫날 호텔에 오는 길에 탔던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 도착했던 폼페이였지만, 이 날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폼페이가 아니라 오는 도중에 본 베수비오 화산의 위용이었네요. 여전히 활동 중이라는 베수비오 화산의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 남부 이탈리아 인들의 분노와도 같이...
이탈리아의 가장 큰 문제는 남북의 격차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라도와 경상도의 갈등을 능가하는 이탈리아 내부의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관련 책을 읽어보는건 좋습니다만 건슬링거걸을 진짜라고 믿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로마에는 많은 유적지가 있지만, 그 유적지들은 대부분 ‘의미가 있는’ 유적들입니다. 즉 그 당시를 살아간 일반 민중들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지요 그에 비해 폼페이에는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웅장한 규모의 건축물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지방의 중소도시 전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를 살아간 일반 민중들의 삶을 짐작해보기에는 로마보다 더 적합한 곳이 아닐지요. 유적 중앙부에 위치한 소극장, 홍등가를 보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등가에서 자고있던 개한마리[..]가 꽤 압권.

폼페이 시를 걷다보면 중간 중간에 출입금지 구역들이 있는데, 대게 그 곳에서는 보수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딴건 몰라도 유적지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이탈리아답달까. 한국에서 얼마 전 송강 정철의 묘를 찾아갔을 때 관리의 부실함에 심한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세심함이 부러워진 부분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남았던지라, 우리는 폼페이에서 바로 로마로 돌아오지 않고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배경인 소렌토로 향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그림 같은 풍경. 푸른 바다. 언젠가 나도 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소망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너무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로마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위에서, 꿈속에서나마 이탈리아의 바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날 밤에는 웬일로 꿈을 꾸지 않았다.

-2007년 8월 17일. 로마에서.-
P.S: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노래의 유래는, 수십년전 소렌토가 깡촌이고 그래서 우체국이 없었을때, 한 고위직 인사가 소렌토를 방문했었답니다.(대통령이란 말도 있고 지방 의회의장이란 말도 있고). 그래서 소렌토 사람들은 그 인사에게 '우체국을 만들어주세여'라고 부탁을 했고, 그 고위직 인사도 '넴'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설레발을 치며 기다리던 소렌토 사람들. 그러나 몇년이 지나도 우체국이 설립될 기미는 보이지않고, 그래서 소렌토 사람들은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노래가사에 비해서 꽤 현실적인[..] 유래죠?
4일째에는 역시

# by | 2007/12/06 14:18 | 로마여행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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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바티칸★★승리의 베드로대성당★
뭔가의 영향으로 무지 살벌할 듯하지만...
외국에 가시다니 부럽부럽.
난 언제 영공 벗어나보냐.
그나저나 여름철의 이탈리아는 구름 하나 없이 쨍쨍해서 놀러가기 좋을 것 같네요...
한국은 후삼국 시대이후로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이탈리아처럼 문화나 인종, 언어(이탈리아어는 근대에 들어 토스카나지역 방언을 토대로 만든 표준어)까지 크게 차이나지 않는데도 지역차별과 대립이 심하다는 것은 오히려 더 심각한 것이지요.
윗분이 예를 드신 벨기에의 지역대립도, 왈론인 - 플랑드르인은 민족과 언어가 다르고, 스페인도 카탈루냐인 바스크인은 민족과 언어가 다릅니다.
소위 지역감정이라는건 상당히 기만적인 말입니다. 그냥 전라도와 경상도가 우연히 서로 감정이 나빠서 티격태격하고 있는걸로 보이는데, 실상을 보면 경상도가 주축이 된 전라도 다구리죠. 전라도는
조선후기에 동학운동의 실패와 일제의 호남의병토벌로 패주한 농민상당수가 각지로 유랑하게 됨으로서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후 61년도에 선거에서 박정희에게 투표하였으나, 박정희가 경부축을 중심으로 개발계획을 세움으로서, 전통적 농촌지역으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던 전라도 지역은 산업화에서 소외되어 많은 인구가 다시 빠져 나갑니다. 경상도 말고도 기타지역에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박해가 심해진건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