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Carr-역사란 무엇인가?





아마도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을까요. 손에 집히는 데로 역사책들을 마구 읽던 도중, 처음으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만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란 무엇인가‘가 개론서이면서도 쉽게 쓰여진 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책이긴 하지만, 역시 당시의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네요. 카가 예시로 드는 사례들이 영국인들에게는 상식이나 이역만리의 한국의 한 중학생에게는 너무 낯선 사례들이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때로부터 9년이 지나, 대학생이 된 지금 저는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먹은건 나이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네요.

1장의 시작과 함께 카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딱히 카만이 던진 질문은 아닙니다.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를 서술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이 질문에 봉착했고, 그들은 모두 제각기 자신의 가치관과 그들이 살던 때의 사회관에 따라 답을 내려왔었습니다.
19세기의 액턴과 같은 실증주의적 서술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그 들은 역사란 ‘과거의 사실 그 자체이다’고 답할 것입니다. 또한 20세기의 콜링우드는 ‘역사가와 역사가가 다루는 과거의 일련의 사건의 관계’라고 답하겠지요.

두 견해 모두가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명백하지 않은 사실을 서술자의 의도에 따라 역사서인 것처럼 쓴다면, 그것은 이미 학문이 아니라 문학의 영역이 되겠죠. 환단고기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사실’과 2천 년 전의 카이사르의 루비콘 강 도강을 건넌 ‘사실’을 단순히 똑같은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죠. 역사가는 과거의 일련된 사건들에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실들과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여과하여 받아들여야 함으로, 개개인의 해석 또한 중요합니다.

하지만 카는 이 두가지 견해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액턴에게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과거의 단순한 사실을 구분하는 기분은 무엇인가요?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실에 대해서 역사적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할 수 있는 역사가란 있을 수 없으니, 결국 모든 역사가들은 과거에 일어난 무한대에 이르는 수많은 사실들 중 의미가 있는 몇몇을 선택하여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필연적으로 서술자의 주관이 개입되겠지요.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액턴으로 대표되는 19세기 실증주의 학파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지나치게 숭배하다가보니 결국 ‘사실’이 아닌 ‘문서’를 숭배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우리가 ‘사료’로서 참고하는 ‘문서’들이 사실 전혀 객관적이거나 ‘과거의 모든 사실’을 알려줄 수 없는 자료들이라면? 카는 그 예시로 바이마른 공화국의 외상 슈트레제만과 그의 문서집을 듭니다. 슈트레제만이라는 개인이 남긴 사실로서의 자료들은 베른하르트라는 편집자에 의해서 여과되어 세상에 공개되었고 그 사료를 토대로 우리는 바이마른 공화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대에 추가로 공개된 문서들에 의해서 우리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죠.
이러한 딜레마는 역사상의 미싱링크가 많은 고대, 중세사의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류 역사학자들 중 19~20세기 미국의 노동운동을 메인스트림에 두고 역사를 서술한 학자가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까지 이 시대 미국 노동운동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 1980년 출판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는 최초로 미국의 역사를 민중의 시점에서 서술하였고, 우리에게 역사 서술의 시점이 바뀜에 따라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여정이 얼마나 다르게 비춰질 수 있는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가가 할 일은 오로지 과거의 사실만을 모아 그것을 나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콜링우드로 대표되는 20세기 중엽의 해석 중심 사관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관을 견지하다보면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거의 객관적 역사를 부정하는 회의주의에 이를 우려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A라는 해석도 옳고 B라는 해석도 옳고 C라는 해석도 옳으면, 도대체 역사를 서술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또한 모든 해석에 대해서 의미가 있다면, 역사적 사실은 현재의 특정 목적을 긍정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지 않겠습니까? 역사를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위정자들을 우리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과 주변 국 사이의 조공 무역을, 21세기에 들어서 서양 제국주의 시대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자국의 패권 강화에 이용하는 현재의 중국이 그 예시가 되지 않을까요.

그럼, 이제는 E.H.카의 사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카는 액턴과 콜링우드의 사관을 모두 받아들이고, 거기서 중간에 서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명백한 과거의 사실에서 눈을 돌리는 행위는 물론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역사가는 언제나 최대한의 노력을 통해 가능한 모든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역사를 서술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자료라면 명백히 내재되어 있을 해석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오로지 가위와 풀로 만들어진 역사에도 의미는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서가 아니라 단순한 사전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역사가라는 개인은 현재의 시간에 얽매여있고, 객관적 사실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매여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사이에 우월을 따지는데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카의 말마따나 역사가는 사실의 미천한 노예도 아니고, 군림하는 주인도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카가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일까요?

그는 이렇게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답이다.’




2008년 쯤에 한번 쓴적 있었는데, 학교에서 듣게된 자유전공강의가 어쩌다보니
또 이 책을 다루는 과목이 되버린지라 옛날 생각나고 하는 김에 조금 손 봐서 올려봄요.

아 시-팔 저때가 좋았지 ㅠㅠ

딴거 다 집어치우고 글 보여줬더니 지나치게 구어체 위주라고 까이던 기억만 나네요.


by 다스베이더 | 2011/03/16 00:08 |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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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얼마전에 적은 E.H.Carr-역사란 무엇인가?링크로 오는 엑세스가 꽤 많던데이게 아무리 봐도 지금 듣고있는 자유전공수업 레포트떄문에 들어오는 사람들이란 말이지예................. ... more

Commented by DJ DACK at 2011/03/16 20:57
역사를 처음 배울 때 나오는 '역사란 무엇인가?' 란 개념을 잡아주는 책이자

약방의 감초

역사를 보는 사관에 따라 해석도 바뀌니까 여러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함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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